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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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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4/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간증 - 기꺼이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리

 샬롬! 사랑하는 형제자매님, 주 안에서 평안하신가요?
우리는 주변 사람들과 지낼 때 늘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이 있다’라는 이런 처세술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은 뒤에도 여전히 주님을 섬기거나 다 버리고 열심히 헌신하는 일들을 천국에 들어갈 조건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의 이런 생각은 과연 올바른 것일까요? 오늘 내용 <크리스천은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을 거래로 삼지 말아야 한다>를 통해 함께 답을 찾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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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산서 이야기에서 깨우침을 얻다

부모와 아이

저는 인터넷에서 이런 이야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한 아이가 엄마에게 계산서를 내밀었는데, 그 계산서에는 아이가 어머니를 도와 집안일을 하거나 동생을 돌봐 준 내용과 함께 자신에게 총 50불을 줘야 한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엄마는 나중에 아이에게 50불을 주면서 계산서 한 장을 같이 주었습니다. 거기에는 아이가 태어나고 아팠을 때 같이 있어 주었던 일, 아이에게 걸음마를 가르쳐 주었던 일, 아이를 위해 기도했던 일 등 아이가 지불해야 할 내역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각 항목의 청구 금액은 모두 0불이었습니다. 계산서를 본 아이는 너무나 부끄러워서 엄마에게 받은 50불을 다시 돌려주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보고 저는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나이 어린 이런 천진난만한 아이를 용서 안 할 수 없지.’ 하지만 마음을 차분히 하고 다시 생각해 보니, 아무것도 모르는 이 아이의 모습에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여졌습니다. 물욕이 난무하는 이 세상에서 많은 것들은 가격이 매겨지고 우리도 당연하게 자신이 치른 대가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보수를 받게 됩니다. 어떤 때는 마땅히 치러야 하는 대가임에도 우리의 교환하려는 마음 때문에 무정한 거래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 하나님을 위해 버리고 헌신하며 힘들게 사역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눈길을 걷다

그러다가 제가 겪은 일이 생각났습니다. 얼마 전, 교회의 일이 많아 저는 매일 바쁘게 보냈습니다. 힘들기는 했지만 피곤함도 잊은 채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어느 날 저는 새벽 5시에 집을 나서서 15km 떨어져 있는 다른 자매님의 집에 6시까지 도착해 형제자매들과 함께 복음을 전해야 했습니다. 그때 한 겨울은 지났지만, 그래도 아직은 한기가 가시지 않은 날이었습니다. 특히 동이 틀 무렵엔 밤 사이 추위가 삼켜 버린 땅과 나무가 생기를 잃고 꽁꽁 얼어붙어 있을 정도였습니다. 두꺼운 털옷과 코트를 입었어도, 오토바이를 타고 가면서 맞는 매서운 바람은 몸속 깊이 들어와 살을 에는 듯 얼음 동굴에 빠진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다리에 감각을 잃어 몇 번이나 오토바이를 세워 놓고 몸을 녹인 후에야 갈 수 있었습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 일이 아니라면 누가 이 추운 날, 이렇게 이른 시간에 집 밖을 나설 수 있을까? 지금 내가 하는 이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도 다 보고 계시겠지?’ 그러다가 하나님을 믿은 최근 몇 년 동안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을 받으면서도 가정과 직장을 내려놓고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증거하고 복음을 전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그렇게 많은 헌신을 했으니 마지막에 큰 축복과 상을 받을 거고, 주님이 오셨을 때 분명 빛나는 면류관을 주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고 힘이 나니, 이런 날씨도 별로 춥지 않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엄마에게 준 계산서’라는 이야기를 보면서 저는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내 생각과 이야기 속의 아이가 다른 게 뭐가 있지? 나도 겉으로 고생하고 헌신하면서 하나님께 축복과 면류관을 받으려고 했는데.... 이건 하나님과 흥정을 하는 게 아닌가?’


자매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다

그때, 문득 예배 드릴 때 린(林) 형제님이 읽어 주었던 하나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따르지만 오로지 자신이 어떻게 해야 복을 받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재앙을 피할 수 있는지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 그들의 목표는 오직 하나, 복을 받는 것이다. 그 외에 자신의 목표와 무관한 일은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복을 받는 것이 가장 정당한 목적이며, 자신들이 하나님을 믿는 가치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면 그 어떤 것도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현재 하나님을 믿는 많은 사람들의 상태가 이렇다. 그들의 목적과 생각은 얼핏 들으면 정당한 것 같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헌신하고 봉헌하고 자기 본분을 이행하고 있으며, 청춘을 바치고, 가정과 직장을 버리고, 심지어 오랫동안 먼 곳에 나가 동분서주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궁극적인 목적을 위해 자신의 취미도 바꾸고 인생관도 바꾸고, 심지어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도 바꾸지만,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바꾸지 못한다. 그들은 자기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으며, 그 길이 얼마나 멀든, 얼마나 많은 위험과 어려움이 있든,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떤 힘이 그들을 그토록 끊임없이 헌신하게 하는 걸까? 그들의 양심일까? 그들의 위대하고 고상한 인격일까? 사악한 세력과 끝까지 맞서겠다는 결심일까?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하나님을 증거하려는 그들의 믿음일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치려는 충성심일까? 아니면 단 한 번도 사적으로 무언가를 바란 적이 없는 그들의 희생 정신일까? 하나님의 경영 사역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그토록 피나게 노력하고 수많은 대가를 치르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기적이다!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헌신했는지는 차치하고, 그들의 행위만 놓고 보아도 자세히 들여다볼 가치가 있다.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그토록 많은 대가를 치르는 것이 사람과 밀접한 이익 외에 또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을까? 여기에서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던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는 노골적인 이익 관계일 뿐이다. 즉, 복을 받는 자와 복을 베푸는 자의 관계다. 솔직히 말하면, 피고용인과 고용인의 관계다. 피고용인의 수고는 고용인이 주는 품삯을 받기 위함이다. 이런 이익 관계에는 혈육의 정은 없이 거래만 있고, 사랑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베풀고 가엾게 여기는 것밖에 없다. 또 이해는 없고, 어쩔 수 없이 참는 것과 기만하는 것만 있으며, 친밀한 관계는 없고 영원히 넘을 수 없는 깊은 골만 있다.』(<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안에 있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 중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정말 마음이 찔렸습니다. 저는 제가 조금 고생하고 헌신했다고 하나님께 은혜와 축복을 바랐다는 생각에 한없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예전에 저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고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제가 지난 몇 년 동안 가정과 제 일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청춘을 바치고 고통과 환난을 겪어 왔던 것이 제 인품이 훌륭하다거나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고 순종해서가 아닌, 이를 토대로 하나님께 축복과 상을 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복을 누리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한 고생과 헌신으로 하나님과 흥정을 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작은 일이라도 하면 제 공로로 기록해 두고, 항상 마음속으로 어떻게 하나님에게서 복과 상을 받을지를 고민했습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과 흥정을 하고 하나님을 이용하며 기만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 사역의 길에는 불순물과 말도 안 되는 요구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저는 이익만을 좇는 비겁한 소인배였습니다. 정말 너무 이기적이고 비겁했죠. 정상적인 인성에 갖춰야 할 양심과 이성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제야 저는 사람이 사탄에게 패괴된 후 ‘사람은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와 같은 사탄의 생존 법칙을 섬기고, 본성이 이기적이고 비겁하고 이익만 좇고,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 보답을 받으려고 하고,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자신의 이익을 계산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위해 바친 마음에도 개인적인 욕심과 불순물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앞으로 상과 축복을 받을 생각만 했습니다. 이는 기꺼이 봉헌한 것이 아니며 이런 행동에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보답이 없고, 그저 냉혹한 거래만 있을 뿐이어서 하나님의 마음을 너무나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생각으로 하나님을 위해 고생하고 헌신한다면 어떻게 하나님께 칭찬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가늠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에 어떻게 다 

보답한단 말인가

자매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다

그 후 저는 또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한 후, 인류가 패괴된 이후든 인류가 그를 따랐던 때든 상관없이 그는 인류를 자신의 둘도 없는 가까운 존재로 삼았다. 즉, 인류가 말하는 가장 친한 존재로 여겼지 장난감으로 여기지 않았다. 하나님이 스스로를 창조주이고 인류를 피조물이라고 한 이 말씀은 듣기에 조금 등급의 차이를 띠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실제로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한 모든 것은 이런 관계와는 한참이나 동떨어져 있다. 하나님은 인류를 사랑하고 보살피고 염려하고, 또한 끊임없이 인류에게 공급까지 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마음속으로 그런 것을 별개의 일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고, 공로가 큰 일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 그는 인류를 구원하고 인류에게 공급하며 베푼 모든 것이 인류에 대해 엄청난 기여를 한 것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 그는 그저 자신의 방식과 자신의 본질과 소유와 어떠함으로 조용하고 묵묵히 인류에게 공급하고 있을 뿐이다. 사람이 그에게서 얼마나 많은 공급과 도움을 받았든지 그는 사람에게 공을 바라는 생각이나 행동이 전혀 없다. 이는 하나님의 본질로 인한 것이자 진실로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에서나 다른 서적에서 하나님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부분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또한 하나님이 왜 그렇게 행했는지, 왜 이렇게 인류를 보살피고 있는지를 사람에게 표현하거나 표명해 사람이 그에게 깊이 감사하고 그를 찬미하게 한 부분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심지어 그는 상심하거나 극심한 아픔을 느낄 때에도 인류에 대한 책임과 염려를 잊지 않고 그런 ‘상심’과 ‘아픔’을 홀로 묵묵히 감내한다. 그는 예전과 다름없이 그렇게 인류에게 공급하고 있다. 설령 인류가 늘 하나님을 찬미하고 하나님을 증거하더라도 이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해서 얻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잘 대해 준 것을 가지고 사람에게 은혜에 대한 감사나 보답을 받으려고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1> 중에서)

확장 열람: 성경은 어떻게 형성된 것입니까? 성경은 도대체 어떤 책입니까?


행인들

하나님의 말씀에 저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망망대해에 놓여 있던 우리를 택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진리를 깨닫고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세상 사람들과 어떻게 구별돼야 하는지 알게 해 주셔서 사탄의 고통 속에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속에서 살며 진리를 구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는 인생의 참된 길에 들어서게 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은혜를 갚을 줄도 모르고 복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조금 고생하니,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본성이 다시 드러났고, 이를 조건으로 하나님에게서 은혜를 얻고 하나님께 가정이 화목하고 가족이 편안하기만을 구했으며, 하나님으로부터 천국에 갈 수 있는 복과 영광의 면류관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수많은 계산서를 내밀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후 인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셨음에도 우리에게 무언가를 얻으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지으셨고 생기를 불어넣어 주셨으며 우리를 위해 공기와 햇빛, 비와 여러 가지 먹을 것을 주셔서 하나님의 공급과 자양분 속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인류가 사탄에 의해 타락한 후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율법과 계명을 반포해 인류가 어떻게 살아가고 또 어떻게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셨고 그렇게 인류를 수천 년 동안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 후 인류는 계속 죄를 짓고 율법을 지키지 않아 정죄당하고 죽을 위험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친히 육신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죄 없는 육신으로 우리의 죄를 모두 짊어지시고 인류를 죄에서 구속해 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면 우리의 죄는 사함 받았고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크나큰 은혜와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묵묵히 우리에게 공급해 주셨고, 말씀과 역사로 우리를 이끌어 주셨으며 우리를 위해 많은 심혈을 쏟으셨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 아무런 보답을 바라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우리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고 순종하기만을 바라셨죠. 하나님의 깊은 사랑 앞에서 저는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사역을 위해 고생했다며 하나님께 바라고 은혜를 달라고 할 수 있지? 이건 정말 이성이 없는 생각이 아닌가?’


​🍄 우리가 가져야 할 이성과 추구

자매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본분은 복을 받거나 화를 입는 것과 무관하다. 본분은 사람이 마땅히 이행해야 하는 천직이므로 보수나 조건을 따지지도 말아야 하고 이유도 없어야 한다. … 너는 복을 받기 위한 목적으로 본분을 이행해서도 안 되고, 화를 당할까 두려워 본분을 이행하는 것을 거절해서도 안 된다. 내가 한마디 하겠다. 사람이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바이다. 하지만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지 못하면 그것은 사람의 패역이다.』(<성육신 하나님의 직분과 사람의 본분의 구별> 중에서),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피조물이 해야 할 본분을 이행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이다.』(<말씀이 모든 것을 이룬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저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사역하고 헌신하는 것이 결코 하나님과 흥정을 할 수 있는 카드가 아니고, 우리가 상과 축복으로 바꾸는 방법도 아니라 피조물로서 마땅히 이행해야 할 본분이자 의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결말이 어떻게 되든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듯이, 본분은 반드시 완수해야 하는 것이고, 또 본분을 이행하는 것이 우리가 갖춰야 할 이성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올바른 추구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진리를 추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며 기꺼이 그를 위해 바치고 진심으로 그를 사랑하고 그의 뜻을 헤아려야 하며, 그의 가르침에 따라 인성과 이성이 있는 피조물이 되어 그의 마음에 위안이 되어 드려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피조물이 마땅히 가져야 할 추구이며, 그렇게 살아야만 사심 없는 하나님의 공급과 베풀어 주심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베드로가 떠올랐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위해 헌신을 다하며 사역했고, 교회들을 목양하며 자신의 평생을 주님께 바쳤습니다. 그 과정에서 베드로는 많은 고통을 겪었고, 그 당시에 정권을 잡고 있던 자들에게 핍박도 받았고, 결국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히기까지 했죠. 베드로가 한 모든 행동은 주님과 거래를 하거나 천국의 복이나 더 많은 축복과 은혜를 얻으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의 뜻을 따르고 그가 맡기신 일을 해내기 위해서였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를 영광스러운 일로 생각했고, 주님을 사랑하고 만족게 해 드리는 것을 하나님을 믿는 유일한 추구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가장 기쁘게 해 드렸고 마침내 하나님께 온전케 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말씀 묵상

이런 것들을 깨닫고 나니 제 마음은 정말 환해졌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를 위해 사역하고 헌신하려면 우선 방향과 목표를 올바르게 잡고, 베드로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만족게 해 드리는 길을 추구해 기꺼이 그를 위해 헌신하고 충성되이 본분을 이행하며 그가 맡기신 일을 완수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기대와 어긋나기 때문에 끝까지 믿고 나서도 하나님의 칭찬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저를 깨우쳐 주시고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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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 말씀 찬양 CCM 2019 <하나님의 부탁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라>


⭐⭐⭐⭐⭐


어떻게 해야 죄의 매임에서 벗어나 정결케 될 수 있을까요? 

그 길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우리에게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10/24/2020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 마태복음 24장 23~24절 설교 : 어떻게 이단을 분별할 것인가

 오늘날, 여러 재난이 임하면서 주님 재림과 관련한 성경 속 예언들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수많은 형제자매들이 주님이 벌써 오지 않으셨을까 하는 예감에 주님을 찾고 싶어 하지만, 이단에게 미혹될까 두려워 대담하게 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단을 경계하는 데만 신경 쓰다 보면 정말로 재림한 주님을 문전박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미련한 처녀처럼 주님을 맞이하지 못한 채 버려지고 도태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양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정말 자질과 분별력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진리를 구하며 진짜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할 수 있기 때문에 거짓 그리스도에게 미혹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가장 알아야 할 것은 진짜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는 법입니다. 그래야 이단에 속지 않고, 주님의 재림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 24:23~24)이란 말씀 때문에 누군가 주님이 이미 돌아오셨다고 말하는 소리를 들어도 구하거나 알아보지 않고 여전히 종교계를 따르며 ‘주님이 육신을 입고 돌아오신다고 증거하는 자들은 모두 가짜다’라는 관념을 고집합니다. 이러면 우리가 주님의 재림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이라 여러 차례 예언하셨습니다. 만약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주님이 육신을 입고 돌아오신다고 증거하는 자들은 모두 가짜다’라고 이해한다면 이는 주님의 재림을 부인하는 태도가 아닐까요? 그렇다면 이는 하나님께 대적하는 큰 죄입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데 있어서 우리는 소극적이고 방어적이어선 안 됩니다. 그러면 주님의 재림을 놓치게 됩니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하나님 음성 듣기를 구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마 25:6) 그리고 계시록에도 이런 예언이 있습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계 2:7) 깨어서 기다리고 하나님 음성 듣기를 중요히 여기는 것, 이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누군가 주님이 돌아왔다고 증거하면 사람은 슬기로운 처녀가 되어 적극적으로 주님의 음성을 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한 진리에 대해 교제해 봅시다.

🌱진짜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는 법 1: 그리스도는 진리요, 길이요, 생명임을 인정한다

진짜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려면, 우리는 그가 진리를 선포할 수 있는지,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을 할 수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성육신한 이상 하나님의 본질이 있고, 성육신한 이상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성육신한 이상 해야 할 사역을 가져오고, 하나님이 성육신한 이상 하나님의 어떠함을 나타낼 것이다. 성육신한 이상 사람에게 진리를 가져다주고, 생명을 베풀고, 길을 가리켜 줄 수 있다. 하나님의 본질을 갖추지 않은 육신이라면 분명히 성육신 하나님이 아니다. 이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확실하다. 하나님이 입은 육신이 맞는지 알아보려면 그가 나타내는 성품과 말씀으로 확인해야 한다. 바꿔 말해서, 하나님이 입은 육신인지 혹은 참도인지 확인하려면 반드시 그의 본질로 판별해야 한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입은 육신인지 아닌지의 핵심은 그 본질(사역, 말씀, 성품 등 훨씬 다양한 측면)에 있지 겉모습에 있지 않다는 말이다. 겉모습을 살피느라 그 본질을 소홀히 한다면 그것은 사람이 무지몽매한 것이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서문> 중에서)
『그리스도란 성육신 하나님의 호칭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진리를 베풀어 주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조금도 지나치지 않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본질이 있고, 사람이 이를 수 없는 하나님의 성품과 사역의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 없으면서 자칭 그리스도라고 하는 자는 가짜다. 그리스도란 땅에서의 하나님의 발현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땅에서 사역을 펼치고 사람들 가운데서 그의 사역을 완성할 특유한 육신이다. 그 육신은 아무나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육신은 하나님이 땅에서 하는 사역을 감당할 수 있고,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낼 수 있으며,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고,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할 수 있는 육신인 것이다. 그리스도를 사칭하는 자들은 언젠가 모두 쓰러질 것이다. 그들이 자칭 그리스도라고 하지만 그리스도의 본질은 조금도 지니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짜와 가짜는 사람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답하고 결정하는 것이라고 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말세의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영생의 도를 줄 수 있다> 중에서)
하지만 거짓 그리스도의 본질은 악령이자 마귀로, 진리라곤 전혀 없으니 당연히 진리를 선포할 수도 없습니다. 그들 대부분 교만하고 황당무계한 인간들로, 사람들이 성경의 지식을 숭배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이런 심리를 이용해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여 여러 기이하고 황당한 이야기를 해대며 사람을 미혹시킵니다. 그들의 말을 들으면 성품이 변화되지도 하나님을 잘 알게 되지도 않을뿐더러, 영이 어두워지고 가라앉게 됩니다. 그들은 자신의 말을 전 인류가 구하고 알아보도록 공개할 수가 없습니다. 그저 뒤에서 몰래 분별력 없는 사람들을 미혹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선 본질을 가지고 진짜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해야 합니다. 신성의 본질을 가진 그리스도만이 진리를 선포해 인류를 공급하고 구원할 수 있는데, 이는 신성의 본질이 없는 인간은 아무리 지식과 재주가 있어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악령과 마귀 역시 당연히 진리를 선포할 수 없고, 사람을 구원하는 사역을 할 수 없습니다. 그저 사람을 미혹하고 패괴할 수 있을 뿐입니다. 여기서 알 수 있다시피, 진짜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려면 반드시 그리스도는 진리요, 길이요, 생명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다음 말씀처럼 말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 14:6),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계 14:4)

오직 성육신하신 하나님만이 그리스도라 불릴 수 있다고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이 육신으로 실체화한 존재이자, 하나님의 소유와 어떠하심,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지혜가 모두 육신 안에 실체화한 존재입니다. 그리스도는 신성의 본질을 가지고 있는 진리의 화신입니다. 그분은 언제 어디서든 진리를 선포해 사람을 공급하고 목양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만이 인류를 구속하고 구원하는 사역을 하실 수 있습니다.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인 예수님이 바로 이러하셨습니다. 어디서든 진리를 선포하며 사람들에게 회개의 도를 가져다주셨고, 사람들을 율법의 속박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우리가 사람을 사랑하는 법, 용서하는 법을 알도록 일련의 요구를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사역과 말씀, 그리고 인류를 향한 그분의 자비와 긍휼은 그 어떤 사람도 해낼 수 없는 것으로 하나님의 신분을 온전히 대표해 줍니다.

🌱진짜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는 법 2: 늘 새로운 사역을 하시는 하나님은 중복 사역을 반복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늘 새로운 하나님으로, 사역을 반복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점을 가지고 진짜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크리스천의 기쁨

먼저 하나님 말씀을 보겠습니다. 『오늘날 만약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며, 수많은 권능을 나타낼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서 자칭 돌아온 예수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악령이 가장한 것이고, 악령이 예수를 모방하여 행한 것이다. 이 점을 기억하라! 하나님은 중복 사역을 하지 않는다. 예수의 그 단계 사역은 이미 완성되었기에 그 뒤로 하나님은 더 이상 그 사역을 하지 않는다. … 만약 하나님이 예수가 행한 것과 똑같이 말세에도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친다면, 하나님의 사역은 중복된다. 그러면 예수의 사역은 의의도, 가치도 없어진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한 시대에 한 단계 사역만 행한다. 하나님이 한 단계 사역을 마칠 때마다 악령이 곧이어 모방하고, 사탄이 하나님을 뒤따라가면 하나님은 다시 방식을 바꾼다. 너희는 하나님이 한 단계 사역을 마치면 악령이 이를 모방한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ㆍ하나님의 현재 사역에 대한 인식> 중에서))
하나님 말씀에서 볼 수 있다시피, 하나님은 늘 새로우신 분으로 중복 사역을 반복하지 않으십니다. 오셔서 사역할 때마다 하나님은 늘 새 시대를 여시고 옛 시대를 끝내시며, 더 새롭고 더 높은 사역을 가져오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율법시대를 완성하시고 율법과 계명을 반포하셔서 사람들의 삶을 이끄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과거의 사역을 반복하지 않고 율법시대를 끝내고 은혜시대를 여셔서, 인류를 구속하고 인간의 죄를 사해주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이런 사역들은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짓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질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 없고, 새 시대를 열고 옛 시대를 끝낼 수도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이 하신 사역의 뒤를 따라가며 하나님의 어조와 말씀을 흉내 내고, 하나님의 과거 사역을 모방해 약간의 이적과 기사를 보여 자신을 드러내고 하나님을 사칭하며 사람을 속일 수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거짓 그리스도에게는 권병이 없기에, 그들이 아무리 흉내 내려 해도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거나, 나사로를 부활시키는 등의 이적은 할 수가 없습니다. 즉, 말세에 다시 오신 하나님은 절대로 예수님이 하셨던 사역을 반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말세에 하나님의 사역을 모방해 병을 치료하고 귀신을 쫓는 등 간단한 이적과 기사를 보이며 사람을 미혹하는 자가 있다면 그자는 분명 악령이 외식하는 것이고, 거짓 그리스도로, 이단이 확실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경고하신 바 있습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 24:24)

영적 일기 쓰기

말씀 묵상

여기까지 교제를 통해, 우리 모두 그리스도만이 하나님 생명의 본질이 있고, 진리를 선포할 수 있으며 사람에게 진리를 공급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진리를 좋아하고 갈망하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그 말씀에 이끌려 정복됩니다. 이들은 하나님에 속한 사람들로 하나님 음성을 알아들을 수 있고,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 자신임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 요한 같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예수님이 바로 다시 오신 메시야임을 알아보고 앞다투어 주님을 따른 것처럼 말입니다. 말세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오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 집에서 시작되는 심판 사역을 하시고, 인류를 구원하는 모든 진리를 선포하여 하나님의 6천 년 경영 사역의 비밀을 전부 열어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사탄 본성과 본질을 폭로하여, 사람이 자신의 패괴된 진짜 모습을 보고, 성품 변화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실천해 정상적인 인성을 살아낼 수 있는지 등의 내용을 알려주셨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영원한 생명의 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하시는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은 바로 하나님 자신의 사역입니다. 이는 성경의 예언대로입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2~13),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찌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요 12:47)

오늘날 전능하신 하나님이 선포한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 말씀집은 진리를 사랑하는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구하고 알아볼 수 있도록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현현을 갈망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이 선포한 말씀을 읽고 하나님의 음성임을 알아보고는 그분이 바로 말세에 다시 오신 예수님임을 확신했습니다. 그들은 앞다투어 어린양의 발자취를 좇아 하나님의 보좌 앞에 돌아왔습니다. 이는 온전히 하나님 자신의 사역이 맺은 결실이고, 이사야서 2장 2절에 나온 예언 대로입니다.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 들 것이라” 여기서 볼 수 있다시피, 주님을 맞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 음성 듣는 걸 중요하게 여기고, 그리스도는 진리요, 길이요, 생명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사역에 대해선 얼마든지 구하고 알아보며, 진리에 근거해 분별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이단의 미혹에 빠질 것을 두려워해 경계만 하고 미처 구하고 알아볼 엄두를 내지 못해 말세 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너무나 어리석은 짓 아닐까요? 이런 식이라면 하나님의 말세 구원을 영원히 놓치고 말 것입니다!

⭐⭐⭐⭐⭐

※추천 영상:

말세에 참그리스도와 거짓 그리스도를 분별하는 법 <진짜는 가짜일 수 없다>


우리는 어떻게 주님의 나타나심을 맞이하고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라갈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 함께 탐구하며 이야기 나눠 보아요.

 




2/05/2020

[전능하신하나님교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말씀하신 ‘다 이루었다’의 참뜻은 무엇일까요

샹  애

아침 7시, 왕설는 딸 혜민의 집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30분 전, 장 목사가 왕설의 집을 방문해 딸과 사위가 벌써 ‘동방번개’를 받아들였다고 알려 주었기 때문입니다. 왕설에게는 너무나 뜻밖이라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동방번개’ 사람들은 예수님이 이미 돌아오셨다고 증거한다던데, 말씀을 선포하고 한 단계 심판 사역으로 인류를 정결케 하신다고. 하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분명히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어. 그렇다면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사역은 이미 끝난 건데, 또 어떻게 새로운 사역을 하실 수 있지? 딸과 사위는 성경을 잘 알고, 신앙생활도 열심이야. 생각도 있고, 똑똑한 애들이 맹목적으로 선택할 리 없을 텐데, 어떻게 ‘동방번개’를 받아들인 거지?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왕설는 도통 알 수가 없어 어떻게 된 일인지 어서 빨리 알아보려고 발걸음을 서둘렀습니다.

30분 후, 딸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왕설는 단도직입적으로 혜민에게 물었습니다. “오늘 아침 일찍 장 목사님이 날 찾아왔단다. 너희들이 이미 ‘동방번개’를 받아들였다고 하던데, 그게 정말이니?”

서재에서 독서 중이던 이준은 장모님의 말소리를 듣고 방에서 나왔습니다. 혜민은 어머니의 표정이 약간 심각한 것을 보고 손을 잡아 끌어 앉히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네, 엄마, 우리는 벌써 ‘동방번개’를 받아들였어요. 그동안 저와 이준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진리와 비밀을 열어 놓은 것을 모두 보았어요. 예를 들면 6천년 경륜의 비밀, 성육신의 비밀, 하나님의 3단계 역사의 비밀, 하나님께서 말세 심판 사역과 인류를 정결케 하고, 구원하시는 방법, 인류의 결말과 종착지 등등 을요.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볼수록 이 말씀이 진리고, 권능과 능력이 있는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엄마, 우리가 오랫동안 기다려온 예수님이 정말 돌아오셨어요. 바로 성육신의 전능하신 하나님이에요. 엄마도 어서 같이 알아봐요!”

왕설는 딸의 이야기를 듣고는 표정이 조금 누그러져서 말했습니다. “혜민, 지금 교회가 황량하다 보니 너희가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를 찾아가는 건 엄마가 반대하지 않는단다. 하지만 ‘동방번개’는 주님이 이미 돌아오셔서 심판 사역과 인류를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셨다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하니?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분명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어. 그건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사역이 이미 끝났다는 의미란다. 우리가 주님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어. 주님이 다시 오실 때는 우리를 바로 천국으로 데려가 주실 테니 더 이상 새로운 사역은 있을 수 없단다. 목사님과 장로님이 항상 설교하신 걸 너희가 잊지는 않았겠지? 어떻게 또 ‘동방번개’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어?”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사진제공: 전능하신하나님교회]

이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장모님, 저희는 그동안 교계의 목사와 장로의 말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말씀하신 ‘다 이루었다’를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사역이 끝났다는 의미로 알았어요.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우리를 직접 천국으로 데려가 주실 것이고, 다른 새로운 사역은 없을 거라고요. 이 관점이 주님이 말씀하신 원래 뜻과 맞을까요? 하나님의 사역에 맞는 사실일까요?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단지 ‘다 이루었다’라고만 말씀하셨지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사역이 완전히 끝났다고는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그런데 목사와 장로는 주님이 말씀하신 ‘다 이루었다’를 놓고 하나님의 사역이 이미 끝났다고 단정 지었어요. 주님이 다시 오실 때 더 이상 새로운 사역이 없다고요. 이런 주장은 너무 독단적이지 않나요? 자기 마음대로 주님의 말씀을 해석하고 있는 게 아닌가요? 장모님, 한번 생각해 보세요. 만약 예수님이 말씀하신 ‘다 이루었다’가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사역이 끝났다는 의미라면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염소와 양, 알곡과 가라지, 선한 종과 악한 종을 구별하시겠다는 예언과 사역은 어떻게 이루시죠? 게다가 예수님은 또 이런 예언도 하셨어요.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 16:12~13),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한복음 12:48) 베드로도 이렇게 말했죠.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베드로전서 4:17) 이런 말씀을 통해 주님이 다시 오시면 진리를 선포하고 심판 사역을 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만약 목사와 장로의 말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말씀하신 ‘다 이루었다’를 예수님이 이미 인류를 구원하시는 사역을 끝내서 더 이상 새로운 사역이 필요 없다고 믿는다면, 이 예언들을 또 어떻게 이루시겠어요? 예수님이 예언한 재림 후에 진리를 선포하고 심판 사역을 하신다는 말씀이 다 허사가 되는 게 아닌가요? 이렇게 보면, 교계의 주장은 주님의 말씀을 부인하고, 주님의 말세 구원의 은혜도 부인하는 게 아닌가요?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말씀하신 ‘다 이루었다’를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사역이 다 끝났다고 규정할 수 없어요. 그건 우리들의 상상이고, 주님의 뜻에도 맞지 않거든요. 우리가 자신의 뜻대로 하나님의 사역을 규정한다면 쉽게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요!”

왕설는 이준이 말한 성경 구절들을 곰곰이 생각하며 깊은 생각에 빠졌습니다. ‘그래! 요즘 난 목사와 장로의 말만 듣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말씀하신 ‘다 이루었다’를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사역이 끝났다는 줄 알고, 앞으로 새로운 사역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방금 아이들이 말한 주님의 예언은 확실히 주님이 다시 와서 진리를 선포하고 심판 사역을 하신다는 거야. 그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말씀하신 ‘다 이루었다’는 대체 무슨 의미일까?’ 여기까지 생각한 왕설는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왕설가 진리를 찾기 시작한 걸 본 후,혜민과 이준은 기뻐하며 인내심을 가지고 말했습니다. “엄마,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말씀하신 ‘다 이루었다’는 사실 은혜시대 예수님의 구속 사역이 끝났다는 의미예요. 우리가 예수님의 사역을 받아들이고, 주님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었어요. 우리에게는 주님께 기도드릴 수 있는 자격이 있고, 주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은혜와 진리를 누릴 수 있었어요.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구속 사역이 이뤄낸 효과예요. 하지만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사역은 이로써 끝나지 않았어요. 우리 같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봐요, 하나님의 말씀을 보시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말하면서 혜민은 침실에서 《말씀이 육신으로 나타남》이라는 책을 한 권 가져와 펼쳐 놓고 읽었다. 『사람이 보기에 하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하나님의 성육신 사역을 끝마친 것이고, 온 인류를 구속한 것이며, 음부의 열쇠를 가진 것이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사역은 부족함 없이 완성되었다고 여겼다. 사실 하나님이 보기에는 그가 작은 부분의 사역만 완성했을 뿐이다. 그는 인류를 구속하였을 뿐 정복하지는 않았고, 사람의 사탄스러운 추한 몰골을 바꾼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했다. “성육신한 몸은 죽음의 고통을 겪었으나 이는 내가 성육신한 목적이 아니다. 예수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혔으나 나의 사역 중 일부만 완성하였을 뿐 모든 사역을 완전히 끝낸 것은 아니다.”』(〈사역과 진입 6〉 중에서), 『사람은 구속되어 죄 사함을 받았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의 과오를 기억하지 않고, 사람의 과오대로 사람을 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할 뿐이다. 하지만 사람이 육체에서 살며 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끊임없이 죄를 짓고, 사탄의 타락 성품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끊임없이 죄짓고 끊임없이 사함 받는 사람의 삶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낮에는 죄짓고 밤에는 자백한다. 그러므로 속죄제가 사람에게 영원히 유효하다고 해도 사람을 죄악에서 구원해 낼 수 없다. 그것으로는 구원 사역의 절반만 완성되었을 뿐인데, 이는 사람에게 아직도 타락한 성품이 있기 때문이다….』(〈성육신의 비밀 4〉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나서 혜민이 나눴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분명히 말씀하고 계세요. 예수님이 하신 구속의 사역은 다만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사역의 절반만 끝냈을 뿐이라고요. 우리는 예수님의 구원으로 죄 사함을 받고 뚜렷이 드러난 죄는 짓지 않으며 겉으로 좋은 행동들을 하지만, 죄의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어요. 우리는 교만하고, 이기적이고 비열하며, 교활하고, 간사한 등등 타락한 성품의 지배를 받아서 항상 자신의 이익과 체면을 보호하려고 거짓말하고 남을 속여요. 우리보다 잘난 사람들을 보면 질투하고 인정하지 않죠. 우리의 이익을 해치는 사람은 미워하고 복수까지 하려고 해요. 게다가 세상의 사악한 조류를 따르며 돈을 사랑하고, 허영을 탐하고, 명리를 사모해요. 천재와 인재가 닥치거나 불행한 일이 생기면 우리는 또 하나님을 오해하고 원망하기도 해요. 심지어 관념과 상상에 따라 하나님의 사역을 비난하고 정죄하기까지 하죠. 우리의 이런 모습은 우리가 주님을 믿고 죄 사함을 받았지만 우리 안의 사탄의 본성과 타락한 성품은 여전히 뿌리 깊이 박혀 있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해요. 이것이 우리가 범죄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근원이죠. 우리의 범죄의 본성이 해결되지 않으면, 자신도 어쩔 수 없이 하나님께 범죄하고 대적하며 하나님을 배신할 수 있어요.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 주고 계세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레위기 11:45) 또 히브리서 12장 14절에서도 말씀하셨어요.‘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라서 천국은 더러운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에요. 우리가 이렇게 항상 범죄하고 하나님께 대적하는 데 어떻게 하나님의 얼굴을 뵐 자격이 있겠어요? 어떻게 하나님께 이끌려 천국으로 들어갈 자격이 있겠어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말세에 다시 오셔서 하시는 한 단계 새로운 사역으로 우리 안의 범죄하는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해요. 그래야만 우리가 사탄의 타락한 성품에서 벗어나 정결케 되고, 구원받을 수 있어요. 이것 또한 성경의 예언을 이루신 거예요.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베드로전서 1:5)”

하나님의 말씀을 읽다[사진제공: 전능하신하나님교회]

말하면서 혜민이 《말씀이 육신에 나타남》의 한 페이지를 펼쳐 놓고 왕설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같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 두 단락을 보면 이해가 더 잘 될 거예요.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너희처럼 이제 막 구속된 죄인들은 변화의 과정과 하나님에 의해 온전케 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는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수 있겠느냐? 지금의 너같이 고루한 사람을 예수가 구원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네가 죄에 속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구원 덕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네게 죄와 더러움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네가 변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어떻게 거룩해질 수 있겠느냐? 네 안에는 여전히 더러움으로 가득하며, 너는 이기적이고 비열하다. 그러면서도 예수의 강림에 함께하기를 원하느냐? 그런 꿈 같은 일이 있겠느냐? 하나님에 대한 너의 믿음에는 한 단계의 과정이 생략되었다. 너는 그저 속량되었을 뿐, 변화의 과정은 거치지 않았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려면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여 너를 변화시키고 정결케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구속만 될 뿐, 거룩해질 수는 없다. 그리하여 너는 하나님과 함께 복을 누릴 자격이 없다. 너는 하나님이 사람을 경영하는 사역에서 한 걸음 뒤처져 있기 때문이다. 즉, 변화와 온전케 되는 중요한 한 단계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막 구속된 너 같은 죄인은 하나님의 유업을 곧바로 이어받을 수 없다.』(〈호칭과 신분에 관하여〉 중에서), 『예수는 사람들 가운데로 와서 수많은 사역을 했다. 그러나 그는 전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완성하고 사람의 속죄제가 되었을 뿐, 사람의 타락 성품을 다 벗기지는 않았다. 사람을 사탄의 권세에서 완전히 구원하려면 예수가 속죄제가 되어 사람의 죄를 담당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더 큰 사역을 하여 사탄에 의해 타락한 사람의 성품을 완전히 벗어 버리게 해야 한다. 그래서 사람이 죄 사함을 받은 후, 하나님은 다시 성육신하여 사람을 새 시대로 인도하고, 형벌과 심판의 사역을 시작했다. 이 사역으로 인류는 더 높은 경지로 들어가게 되었다. 하나님의 권세에 순종하는 사람은 모두 더 높은 진리를 누리고, 더 큰 축복을 얻고, 진정으로 빛 속에서 살게 되고, 진리와 길,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앞에 쓴 말씀〉 중에서)”

왕설는 여기까지 듣더니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말씀에는 권능이 있구나! 원래 예수님이 하신 사역은 구속의 사역이었어. 우리의 죄는 사함을 받았지만 우리의 범죄의 본성은 없어지지 않은 거지. 그래서 우리가 온종일 죄 속에서 살고 있었던 거야.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아무리 기도하고 자제해도 다 소용없었어. 그러고 보니, 우리가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정말 하나님께서 한 단계 사역을 다시 하시는 것뿐이구나!’

이준이 일어나 왕설에게 물 한 잔을 따라주고 이어서 말했습니다 “장모님,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말세에 왜 심판 사역을 하시고 심판 사역으로 얻는 효과까지 분명하게 알려주고 계세요. 우리가 예수님의 구속 사역으로 죄 사함은 받았지만 사탄의 본성이 아직 뿌리 깊게 남아서 여전히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말세에 타락한 인류의 필요에 따라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기반으로 한 단계 말씀으로 심판 형벌의 사역을 하셔서 우리의 범죄 본성을 해결하고 우리를 죄로부터 철저히 구원해 내시려고 하세요. 우리는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을 받아들여야만 사탄에게 타락 당한 본인의 진짜 모습을 똑바로 보고, 하나님께 대적하는 자기 안의 사탄의 본성을 알게 되요. 또한 하나님은 공의롭고 사람이 거스를 수 없는 성품이라는 것을 체험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 자신을 미워하고 육적인 것을 등지며 진리를 실행하려고 하죠. 이렇게 되면 우리는 사탄의 속박에서 서서히 벗어나 정결케 되고, 변화되며, 구원받아 온전케 되어 진심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어요. 그때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경륜이 완전히 완성되요. 하나님의 일이 다 성사되면 계시록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이에요.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 마른 자에게 값 없이 주리니’(계시록 21:5~6)”

이준과 혜민의 나눔은 왕설의 생각 밖이었고 새로웠습니다.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의 나눈 것은 모두 성경에 부합하고 하나님의 말씀에도 부합하구나, 들어보니 아주 투명해. 주님이 다시 오셔서 진리를 선포하고 심판 사역을 하시는 것은 완전히 우리의 필요 때문이었구나. 우리를 죄에서 철저히 구원해 주셔서 하나님의 구원을 받고, 온전케 되어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되게 하려고….’

“엄마, 무슨 생각 하세요?” 혜민은 왕설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안 하자 가볍게 왕설의 팔을 흔들고 물었습니다.

왕설는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이준과 혜민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너희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인 시간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많은 진리를 알고 있는 줄은 상상도 못했구나. 오늘 너희들의 나눔을 들으니 엄마도 조금은 알 것 같구나. 예수님은 단지 인류를 구속하시는 사역의 일부를 하셨다는 것을. 우리가 예수님의 사역을 받아들여서 죄 사함을 얻었지만 우리의 범죄의 본성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어. 여전히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께 범죄하고 대적해서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할 자격도 없고, 천국으로 가지도 못하는 거야.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려면 하나님께서 다시 오셔서 우리를 정결케 하시는 한 단계 심판 사역이 더 필요하구나!”

혜민과 이준은 왕설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무척 감격해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왕설는 딸과 사위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자책하며 말했습니다. “아이고, 그동안 난 목사와 장로의 말만 듣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신 ‘다 이루었다’를 하나님의 인류 구원 사역이 이미 끝났다는 걸로 생각해서 주님이 오셔서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가 주기만 바라고 있었어. 결국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가 주님이 돌아오셨다고 간증하는 걸 듣고도 구하거나 알아보지 않고 관념과 상상만 고집했어. 너희들에게도 계속 주님의 말씀을 지키도록 권하러 온 건데, 하마터면 큰 실수를 해서 하나님의 말세 구원의 은혜를 놓칠 뻔했구나. 관념과 상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대하면 언제든지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 기회를 놓치겠구나! 우리가 정결케 되어 천국으로 들어가려면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이제야 알겠어! 하지만, 하나님의 말세 심판 사역은 대체 어떻게 사람을 정결케 하고 변화시키는지 난 아직도 모르겠구나. 나도 계속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알아보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도 더 읽어보고 싶구나!”

“감사합니다, 하나님! 마침 내일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의 형제자매와 함께 예배하기로 했는데 와서 들어보시겠어요?”혜민이 말했습니다.

“그러자꾸나.”

“감사합니다, 하나님!”

이 때 창밖의 햇빛은 찬란하게 비추고, 방 안에서는왕설 가족의 유쾌한 대화 소리가 간간이 흘러나왔습니다….

                            

1/30/2020

[전능하신하나님교회] 안식이란 무엇인가?

중청

🔗 안식의 유래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창세기 2:2~3) 태초에 하나님은 엿새 동안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안식에 들어가셨습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조상 아담, 하와를 에덴동산에 두고 그들에게 지켜야 할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아담,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순종하며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아래 질병의 고통도, 노동의 수고도 없이 에덴동산에서 근심 걱정 없이 살며 하나님과 함께 안식을 누렸습니다.

에덴동산에서의 아담과 하와 [사진제공: 전능하신하나님교회]

🔗 인류가 사탄에 의해 타락하고 안식을 잃어버리다

그러나, 아담, 하와에게는 진리가 없고,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이 없어서 사탄의 유혹을 받고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분부하신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배신했기에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습니다. 즉, 남자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을 것이고, 여자는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고 남편의 다스림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 후 아담,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들은 원래 근심 걱정 없이 살던 삶을 잃고, 안식을 잃었습니다. 이때부터 인류는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하심을 잃었고 사탄의 권세 아래 살면서 사탄에 의해 타락하고, 고통당했으며, 사람들끼리 서로 시기 질투하고 싸우며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가인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을 열납하시는 것을 보고 시기 질투하는 마음이 생겨 결국 아벨을 죽였습니다. 서서히 인류 마음에 하나님의 자리가 없어졌고,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면서, 교만하고, 이기적이며, 간사하고, 사악해져 갔습니다. 도둑질, 강도, 간음, 살인 등 저지르는 죄도 점점 많아졌고, 심지어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았으며, 하나님께서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지경까지 타락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홍수로 사악하고 타락한 인류를 멸망시켰고, 노아의 여덟 식구와 함께 방주에 탄 각 생물들만 살아남았습니다.

🔗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은 더 이상 안식하지 않으시다

홍수가 세상을 멸한 후 노아의 후손들은 계속 이 땅에서 번식하며 살아갔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먹고 사는 것만 알았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습니다. 또한 어떻게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는지도 몰랐고, 어떻게 창조주를 만족게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이런 인류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만족게 하겠습니까? 태초에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순종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를 바랐지만, 당시의 인류는 하나님의 요구에 훨씬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더 이상 안식하지 않으시고 인류를 구원하시는 경영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처음에 하나님은 안식하고 있었다. 그때 땅에는 인류도 없고 만물도 없었으며, 하나님은 그 어떤 사역도 행하지 않았다. 인류가 생기고 또 인류가 타락한 뒤에야 하나님은 경영 사역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하나님은 더 이상 안식하지 않고 인류 가운데서 바빠지기 시작했다.』(<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안식에 들어갈 것이다> 중에서)

당시,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의 필요에 따라 인류를 구원하시는 1단계 사역, 즉 율법시대의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를 사용해 율법과 계명을 반포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을 섬겨라, 우상을 섬기지 말라, 안식일을 지키라, 간음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등입니다. 이로써 인류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고, 사람은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며, 무엇이 죄인지, 어떻게 사람들과 지내야 하는지,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고, 무엇을 싫어하는지를 알게 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율법으로 인류가 이 땅에서 살아가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인류가 율법과 계명을 지킴으로써 행동이 제한되고 규범화되어 인류의 죄는 효과적으로 억제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기만 하면 죄로 인해 죽임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율법의 구속을 받았지만 사탄에 의해 타락됨으로 점점 율법을 지키지 못하고 또다시 죄 속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우상을 섬기고, 간음하며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졌고 결국 그들의 죄를 속죄할 충분한 속죄제가 없게 되면서 그들은 율법에 의해 정죄를 받고 죽음에 처할 위험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시대가 이어진 수천 년 동안 인류는 율법시대의 인도에 익숙해지고 무심해져 차츰 하나님의 보살핌에서 멀어졌다. 그 때문에 사람은 율법을 지키면서도 한편으로는 우상을 숭배하고 악행을 저질렀다. 그래서 그들은 여호와의 보호를 잃게 되었으며, 그들의 생활은 성전에서 제단을 지키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사람은 하나님의 경영 안에 있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 중에서)

하나님은 친히 창조하신 인류가 멸망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습니다.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당시 사람의 필요에 따라 2단계 사역, 즉 은혜시대의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성육신으로 이 땅에 오셔서 율법과 계명의 기초 위에서 회개의 말씀을 선포하셨고, 사람들에게 더욱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실행 방법을 알려 주셨습니다. 예를 들면, 사람들에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 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사람을 포용하고, 인내하며, 용서하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요구를 깨닫고 사람됨의 원칙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에, 예수님은 인류를 구속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그분의 죄 없는 육신으로 인류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이때부터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받아들이고, 주님의 이름을 외치는 사람들은 율법의 정죄를 받지 않았고, 하나님 앞에 나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누릴 자격이 생겼습니다. 또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사람들의 마음은 안식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

예수님과 사람들이 얘기하는 장면[사진제공: 전능하신하나님교회]

예수님의 구속 사역은 2천 년 동안 계속되었고, 우리는 죄를 저지르고 주님께 자백하면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죄는 여전히 존재하고, 교만하고, 이기적이고 교활하며, 간사하고, 탐욕스럽고 사악한 사탄의 본성은 뿌리가 깊어서 항상 죄를 저지르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주님의 말씀을 행하지 못하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개인의 이익과 명예와 지위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항상 거짓말하고, 남을 속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자리가 없고, 무슨 일이 생겨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으며 항상 사람을 따르고 우러러봅니다. 또한, 지위가 생기면 우리는 항상 자신을 높이고 드러내며 사람들에게 숭배하게 하고 우러러보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이 사람의 관념과 맞지 않을 때 우리는 또 하나님을 원망하고, 판단하며, 부정하기까지 합니다. 집안에 천재지변의 화가 닥치거나 평안하지 않은 일이 생기면 우리는 하나님을 배신하고 하나님을 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사탄에 의해 깊이 타락한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완전히 죄에서 벗어나고, 사탄의 흑암 권세에서 벗어나서 진정한 안식에 들어가기를 원한다면, 사탄의 타락한 성품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하는 하나님의 한 단계 더 높은 구원 사역이 필요합니다.

🔗 어떻게 안식에 들어가는가

진정한 안식에 들어가려면 우리는 먼저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에 들어가는 삶이란 싸움도 더러움도 없고 불의도 남아 있지 않은 삶이다. 다시 말해, 사탄(적대 세력)의 방해도 사탄의 파괴도 없으며, 하나님과 적대되는 세력의 침해가 없는 것이다. 또한 만물이 각기 부류대로 나뉘어 창조주를 경배하고, 하늘과 땅이 모두 평온한 것이다. 이것이 인류가 안식하는 삶이다. 하나님이 안식에 들어갈 때 땅에는 더 이상 불의한 것이 존재하지 않고, 그 어떤 적대 세력의 침해도 존재하지 않는다. 인류 또한 새로운 경지에 들어가는데, 그들은 더 이상 사탄이 타락시킨 인류가 아니라 사탄에 의해 타락했다가 다시 구원받은 인류이다. 인류가 안식하는 날은 하나님이 안식하는 날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인류가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기에 안식을 잃은 것이지 처음부터 안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안식에 들어간다고 해서 만물이 활동하지 않거나 만사가 발전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더 이상 사역하지 않거나 사람이 더 이상 삶을 살지 않는 것도 아니다. 안식에 들어간다 함은 바로 사탄이 멸망하고, 사탄과 한통속인 악인들이 모두 징벌받아 멸절하며, 하나님과 적대하는 모든 세력이 다시는 존재하지 않음을 상징한다. 하나님이 안식에 들어간다 함은 하나님이 더 이상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을 행하지 않음을 말한다. 인류가 안식에 들어간다 함은 전 인류가 하나님의 빛과 축복 속에서 살게 되고, 사탄이 타락시키는 일도 없고, 불의한 일도 일어나지 않으며, 모두 하나님의 보살핌을 받으며 땅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안식에 들어갈 것이다>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안식에 들어가는 것과 인류가 안식을 누리며 사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려 주셨습니다. 즉, 마지막 하나님의 경륜이 끝난 후에, 만물은 각기 부류대로 나뉘고, 사탄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악인은 다 멸망해서 이 땅에는 더 이상 더러움과 타락함, 불의함이 없어지고, 사탄의 타락과 방해도 없어집니다. 사람은 모두 사탄의 타락한 성품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게 되며,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면서, 이 땅에서 창조주를 경배할 수 있습니다. 이때부터 인류는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아래에서 살게 되고 하나님의 축복과 인도를 받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으로 안식에 들어가서 사는 삶입니다.

아름다운 곳에서 말씀을 먹고 마시다. [사진제공: 전능하신하나님교회]

지금, 우리의 몸은 더러움과 타락함, 불의함으로 가득 차 있고, 여전히 사탄의 권세 아래 살고 있습니다. 또한 사탄과 사탄에 속한 모든 적대 세력이 아직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완전히 구원해 주시고, 만물을 각기 부류대로 나누기 위해서 하나님은 또 한 단계의 말씀 심판으로 정결케 하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과 같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 16:12~13),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한복음 12:48) 또한 예수님이 말세에 염소와 양, 가라지와 알곡, 선한 종과 악한 종 등을 구별하시는 사역을 하신다는 예언도 있습니다.

말세에 하나님은 수백만 자의 말씀을 선포하시고, 우리가 구원받는 데 필요한 모든 진리를 알려 주셨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6천 년의 경륜, 하나님의 3단계 역사의 비밀, 사람이 사탄에 의해 타락된 사실, 하나님이 어떻게 인류의 타락한 성품을 심판하고 정결케 하시는지, 또한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구원하고 온전케 하시는지, 어떤 사람을 미워하고 도태시키는지, 인류의 이후 결말과 종착지 등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심판 사역하시고 사람을 정결케 하고, 변화시키며, 온전케 하는 동시에 사람을 드러내고, 도태시킵니다. 하나님 말씀의 심판과 형벌을 겪으면서 우리는 자신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한 근원에 대해 알게 되고, 자신이 사탄에 의해 타락한 사실을 간파하게 되며, 하나님의 뜻과 요구를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거스를 수 없는 공의로운 성품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높고 위대하심과 거룩하심과 선하심을 보고, 하나님이 바로 창조주이심을 알게 되는 동시에 자신의 미천함과 비열함, 추악함을 보게 되었고, 진심으로 회개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나 하나님에게 점점 충성하고, 순종하게 되며, 성품도 조금씩 변해갑니다. 우리가 진리를 깨닫고 사탄의 타락한 성품에서 벗어나 하나님 말씀대로 살며 하나님과 한마음 한뜻이 되는 사람이 될 때, 사탄도 다시는 우리를 타락시키지 못하며, 우리도 다시는 하나님을 배신하지 않게 됩니다. 그때, 사탄 및 모든 사악한 세력도 하나님이 내리시는 대재난에 멸망하고,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빛 속에서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아래 살게 되고,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예비해 주신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사역도 끝나고,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안식을 누립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 사역을 받아들이는 것을 거절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죄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고, 계속 사탄의 권세 아래 살게 되며, 사탄에 의해 타락되고, 희롱당하고, 해를 입으며, 결국에는 사탄과 함께 멸망할 수밖에 없고, 영원히 안식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말세에 심판과 형벌을 하는 사역, 즉 정결케 하는 마지막 사역에서 굳게 설 수 있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과 함께 마지막의 안식에 들어가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안식에 들어가는 사람은 모두 정결케 하는 마지막 단계의 사역을 거쳐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얻어진다. 마지막에 얻어지는 그 사람들은 마지막의 안식에 들어갈 것이다. 형벌과 심판 사역의 본질은 인류를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자 최종 안식의 날을 위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전 인류는 각기 부류대로 나뉠 수 없고 안식에 들어갈 수도 없다. 이 사역은 인류가 안식에 들어가기 위한 유일한 길이다. 정결케 하는 사역만이 인류의 불의를 모두 정결케 하고, 형벌과 심판을 하는 사역만이 인류의 패역한 것들을 모두 드러낸다. 이로써 구원할 수 있는 사람과 구제 불능인 자를 모두 구분해 내고,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과 그럴 수 없는 자를 모두 구분해 낸다. 사역이 끝날 때, 살아남는 사람들은 모두 정결케 되어 더 높은 경지에 들어가서 땅에서 제2의 더 아름다운 삶을 살 것이며, 인류의 안식의 날에 들어가 하나님과 함께 살 것이다. 살아남지 못하는 자들은 형벌과 심판을 받고서 본색이 철저히 드러나고, 그 뒤에 모두 멸망하여 사탄과 마찬가지로 더 이상 땅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이후의 인류 중에는 이런 부류의 자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이런 부류의 자들은 마지막 안식처에 들어갈 자격도 없고,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누리는 안식의 날을 맞이할 자격도 없다. 그들은 의인이 아니라 징벌받을 대상이자 악한 자이기 때문이다.』(<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안식에 들어갈 것이다> 중에서)




1/28/2020

[전능하신하나님교회] 부활절에 숨어 있는 의미를 아시나요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사진제공: 전능하신하나님교회]

한샤오
📌 부활절이란 무엇인가 부활절의 유래
부활절, 주님의 부활절이라고도 불리는 이날은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을 축하하는 날입니다. 정확한 날짜는 보통 매년 춘분 후 첫 번째 보름달이 뜬 다음의 일요일입니다. 매년 3월에서 4월이면 세계 각지에 있는 기독교 신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고 예수님께서 인류에게 가져다주신 은혜와 희망을 기념하기 위해 기념일 당일 경축 행사를 엽니다. 그렇다면 기독교 신자인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것과 함께 예수님께서 구속 사역을 마치시고 왜 죽음에서 부활하시어 사람에게 모습을 드러내셨는지,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사람에게 모습을 드러내신 의미를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시어 사람에게 모습을 나타내신 의미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부활한 후의 예수가 해야 했던 첫 번째 일은 바로 많은 사람에게 자신을 보게 할 뿐만 아니라 그의 존재와 죽음에서 부활한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아울러 사람과의 관계를 그가 육신에서 사역하던 시기의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그리스도와 사람과의 관계로 회복시켜 놓는 것이었다. 그래야 사람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후 죽음에서 부활한 사건과 예수가 인류를 구속한 사역에 대해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을 수 있을 터였다. 한편, 부활한 예수가 사람들이 보고 만질 수 있는 존재로 나타났다는 이 사실은, 사람들을 흔들림 없이 확고하게 은혜시대에 자리 잡게 하였다. 이로부터 사람들은 예수가 ‘사라지거나’ 혹은 ‘말없이 떠나도’ 지난 율법시대로 퇴보하지 않고, 예수의 가르침과 사역에 따라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로써 은혜시대의 사역은 본격적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고, 율법 아래 있던 인류도 이때부터 정식으로 율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원에 진입하고 새로운 시작을 맞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부활한 예수가 사람 앞에 나타난 사건이 가진 다양한 의미이다.』(<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부활한 예수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 말씀하였다. 그들에게 요구 사항을 제시하고, 사람에 대한 자신의 마음과 기대를 남겼다. 즉, 성육신 하나님은 육신으로 지냈던 기간이든,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하여 영체가 된 다음이든 인류에 대한 염려와 요구에 변함이 없었다. 그는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도 제자들을 염려했다. 모든 사람의 상태를 훤히 알고 있었고, 각자의 부족한 부분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죽음에서 부활하여 영체가 되었지만 육신에 거할 때와 다름없이 사람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리스도라는 예수의 신분에 대해 사람들이 완전히 확신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육신으로 있던 기간 동안 사람에게 높은 수준의 요구를 하지 않았다. 그는 부활한 후에 사람들에게 나타나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으며, 성육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추호도 의심하지 못할 정도로 확신시켰다. 그의 현현과 부활은 사람이 평생 추구하는 최대의 이상(異象)과 원동력이 되었다. 예수가 죽음에서 부활한 사건은 그를 따르는 모든 자에게 확신을 주었을 뿐 아니라, 은혜시대의 사역이 인류 가운데 완벽하게 실현되게 하였다. 이에 따라, 은혜시대 예수의 구원 복음은 점차 전 세계 방방곡곡으로 퍼져 나갔다. 예수가 부활한 후에 사람들 앞에 나타난 것에는 아주 큰 의미가 있지 않으냐?… 그의 나타남으로 인해, 사람들은 또 한 번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애틋함과 보살핌을 깨닫고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하나님은 시대를 개척하고 열어 나가며, 또 시대를 종식시키는 분임이 강력하게 입증된 것이다. 그는 사람들 앞에 나타남으로써 모든 사람의 믿음을 견고하게 만들었고, 세상 사람에게 그가 하나님 자신이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또한,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영원한 증거를 얻게 하였으며, 새 시대의 사역 국면을 맞게 되었던 것이다.』(<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신 3> 중에서)

예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후 여러 차례 제자들 앞에 모습을 나타내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깊은 의미가 있을뿐더러 하나님의 고심이 숨겨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때 그분을 따르던 기독교 신자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과 기사를 본 후 입으로는 예수님이 바로 주님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인정했지만 사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도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이시고 하나님 자신이라는 사실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로마 정부에 체포되고 병사에게 채찍질 당하며 농락당하셨을 때 주님을 따르던 많은 자는 예수님의 신분을 의심했습니다. 그로 인해 주님을 향한 사람들의 믿음이 점점 작아졌고 특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이후 많은 사람은 주님께 크게 실망하고, 의심의 불씨는 결국 예수님을 부인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만약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셨다면 주님을 따르던 많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을 것이며 다시 율법시대로 돌아가 구약 율법을 계속 지켰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과 폐부를 감찰하고 계십니다. 사람의 나약함과 분량이 작다는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죽음에서 부활하시어 여러 차례 제자들 앞에 나타나시고 제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셨으며 부활 후 그분의 영체를 제자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 앞에서 음식을 드시고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하신 것은 예수님이 정말 죽음에서 부활하셨고 그분이 바로 과거 사람을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시던 예수님이시며, 예수님이 바로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 자신이시고 성경에 예언된 인류를 구속하시는 메시야라는 것을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이 마음으로 확신하길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의심하거나 부인하지 않았고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여겼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사람에게 모습을 나타내시어 주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의 믿음을 굳건히 해 주셨으며,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를 가깝게 해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첫 번째 의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육신으로 오시어 현현 사역을 하셨고 율법시대를 완전히 끝내시고 은혜시대를 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써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확실히 심어 주었습니다. 성육신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비록 십자가에 못 박혔지만 죄와 죽음을 이겨 내고 사탄을 이겨 내 구속 사역을 마치시고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기원을 여시어 사람들을 구약 율법 시대로부터 완전히 꺼내셨고 흔들림 없이 확고하게 은혜시대에 자리 잡게 하시어 사람들에게 은혜시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하시는 이끌어 주심과 목양 및 양육을 받게 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부활 후 승천하신 다음 사람과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하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며 굳건한 믿음으로 예수님을 따르고 주님의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의 경우,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시어 그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시자 그들의 믿음은 더욱 커졌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고 증거하기 위해 그들은 어려움과 위험에도 굴하지 않고 굳건히 자신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복음을 널리 확장하기 위해 모든 것을 헌신했으며 심지어 주님을 위해 순교하기도 했습니다. 마침내 예수님의 복음은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갔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많아졌으며 모든 가정과 사람들이 이를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에서 부활하시어 사람에게 모습을 드러내시고 사람과 말씀을 하시며 마음을 나누고 제자들과 함께 식사하셨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은 사람을 돌봐 주시고 걱정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고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 자신이시며 성육신으로 오신 그리스도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흔들림 없이 확고하게 은혜시대에 자리 잡게 해 주셨으며 예수님의 구속 사역이 이로 인해 널리 퍼져 세계 곳곳에 닿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시어 사람에게 모습을 드러내신 것은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고심이 숨어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와 전능하심도 숨겨져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님, 하나님의 깨우침과 이끌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를 통해 저는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하나님의 사역에서 사람을 염려하고 걱정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1/26/2020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입니까

목차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말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말이 존재하는 것일까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왜 예수님을 그분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증거하신 것일까

주님의 은혜를 받은 후 저는 마태복음 3장 17절에 기록된 성경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그리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설교하실 때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셨습니다.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도 ‘내 아버지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천 년간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은 다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일부 형제자매님은 성경에 이렇게 기록된 것을 보았습니다. 빌립이 예수님께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하시니 주님께서 빌립에게 말씀하셨습니다.“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요한복음 14:9~10) 또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요한복음 10:30) 그래서 일부 형제자매님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신데 왜 주님께서는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라고 하신 걸까요?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마치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 자신이고 아버지와 아들로 나눌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인 걸까요 아니면 하나님 자신일까요?” 오늘 이 질문에 관해 이야기 나눠 보도록 하겠습니다.

🔑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말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목자이신 예수님 [사진제공: 전능하신하나님교회]

성육신하신 예수님께서 인간 세상으로 오셔서 인류를 구속하시는 사역을 펼치신 후 율법시대가 막을 내리고 은혜시대가 시작되었고 예수님께서는 직접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고 지내셨습니다. 당시 성령께서는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임을 증거하셨고 예수님 역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했고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말이 이때부터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세요. 창세기에 하나님께서 아들이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말이 존재하는 것일까

성경을 본 형제자매님이라면 모두 성경 창세기에는 하나님께 아들이 있다는 이야기는 기록되지 않았음을 알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율법시대 사역을 하실 때도 아들이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게다가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때 제자들에게 분명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요한복음 14:9~11),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이처럼 우리는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 자신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성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이시며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영을 육신에 실제화하여 하나님의 사역을 펼치시는 것입니다. 그분께는 정상적인 인성뿐만 아니라 완전한 신성도 있습니다. 따라서 그 본질은 바로 하나님 자신인 것입니다. 어떤 책에 적힌 내용처럼 말입니다. 『성육신 하나님을 가리켜 그리스도라 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이 입은 육신이며, 이 육신은 육에 속한 그 어떤 사람과도 다르다. 다르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육에 속하지 않은, 영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정상 인성과 완전한 신성을 모두 갖고 있으며, 그의 신성은 어느 누구에게도 없는 것이다. 그의 정상 인성은 육신으로 하는 모든 정상적인 활동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고, 신성은 하나님 자신의 사역을 위한 것이다. 인성이든 신성이든 모두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한다. 그리스도의 본질은 영이자 신성이기에 그의 본질은 곧 하나님 자신의 본질이다….』(<그리스도의 본질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중에서)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지만 그분은 하나님 영이 실제화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역하실 때 긍휼과 자애의 성품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렇게 율법시대가 끝나고 은혜시대가 시작되었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태복음 3:2)와 같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원수를 사랑하라 등의 가르침과 함께 사람이 새롭게 실천해야 할 길을 알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은 모두 권능과 능력이 있어 사람의 병을 고쳐 주고 귀신을 쫓아내며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셨습니다. 또 말 한 마디로 바람과 바다를 잠재우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으며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여 주셨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어 인류를 구속하는 사역을 완성하시고 인류의 죄를 짊어지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역사 중 우리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것은 모두 하나님 자신의 성품과 속성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생생하신 하나님 자신이며 유일무이한 하나님의 나타나심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오직 한 분뿐이며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

예수님의 기도 [사진제공: 전능하신하나님교회]
주 예수 기도
어쩌면 형제자매님들이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자신이라면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왜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부르셨을까요?” 이 문제에 관하여 한 단락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 당시 예수가 기도할 때 하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것은 단지 창조된 사람의 관점에서 부른 것이다. 단지 하나님의 영이 평범하고 정상적인 육신을 입었고, 피조물의 외형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내면은 하나님의 영일지라도 그의 겉모습은 여전히 정상적인 사람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모든 사람이 말하는 ‘인자’가 된 것이다. 여기에는 예수가 스스로를 ‘인자’라고 말한 것도 포함된다. 인자라고 말한 이상, 인자는 바로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의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이다(남자든 여자든, 결국 모두 사람의 외형이다). 그러므로 예수가 아버지라고 부른 것은 너희가 처음에 하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것과 같은 것이다. 바로 창조된 사람의 관점에서 부른 것이다. 너희가 외웠던 예수가 가르쳐 준 주기도문을 기억하느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그는 모든 사람으로 이렇게 하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했다. 그 또한 하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것은 너희와 평등한 선상에 서서 하늘의 하나님을 부른 것이다. 너희도 이렇게 하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이상, 예수는 자신을 너희와 평등한 지위를 가진 사람이자 하나님이 땅에서 택한 사람(하나님의 아들)으로 여긴 것이다. 너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면, 그것 또한 너희가 피조물이기 때문이 아니냐? 예수가 땅에서 얼마나 큰 권능을 가졌든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까지는 여전히 성령(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인자이자 땅의 피조물의 일원이었다. 그는 사역을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늘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단지 자신을 낮추고 순종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하늘의 영)을 그렇게 불렀다고 해서 그가 바로 하늘의 하나님 영의 아들로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단지 취한 관점이 다른 것이지 위격이 다른 것은 아니다….』(<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존재하는가?> 중에서)

이 말씀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셨을 때는 단지 피조물의 입장, 다시 말해 사람의 입장에서 부르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 영의 아들임을 증명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 예수님의 신분은 인자이시고 정상적인 인성이 있고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사람과 다를 바 없었으며 보통 사람들처럼 먹고 자며, 특별한 점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피조물의 입장에서 하나님께 기도드렸던 것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낮추심과 순종을 나타내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어떤 말투나 호칭으로 기도드렸건 그분의 본질은 성령의 지배를 받으시는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또한 정상적인 인성과 함께 완전한 신성도 갖추셨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정식으로 사역을 하시는 기간에는 말씀을 선포하시거나 이적을 나타내신 것 모두 하나님 영의 지배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신분으로 모든 진리를 선포하실 수 있었고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을 나타내시어 사람에게 진리와 길, 생명을 베풀어 주셨으며 천국의 비밀을 알려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육신으로 오셔서 사역하신 것입니다.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왜 예수님을 그분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증거하신 것일까

예수님이 세례를 받다 [사진제공: 전능하신하나님교회]
예수 세례
또 일부 형제자매님은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면 마태복음 3장 17절에 기록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라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요?” 다음 단락 말씀을 같이 보겠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예수를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하지 않았냐고 말한다. 예수를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라고 한 것은 당연히 하나님 자신이 말씀한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스스로 자신을 증거한 것이다. 단지 다른 관점으로 그 자신을 증거한 것이고, 하늘에서 영의 관점으로 그가 입은 육신을 증거한 것이다. 예수는 그가 입은 육신이지 하늘에 있는 그의 아들이 아니다. 너는 이해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다”라는 예수의 말씀은 그들의 영이 원래 하나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냐? 성육신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위아래로 분리된 것이 아니냐? 사실, 여전히 하나이다. 어쨌든 하나님 스스로 자신을 증거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 하늘의 영은 단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했을 뿐, 하나님의 독생자라고는 하지 않았다. 그런 말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께 어떻게 독생자가 있겠느냐? 그렇다면 하나님은 사람이 되지 않겠느냐? 성육신함으로 말미암아 그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불렸다. 그리하여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생겨났는데, 그것은 단지 하늘과 땅에 있는 차이로 말미암은 것이다.』(<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존재하는가?> 중에서)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성령께서 말씀하신 ‘사랑하는 아들’은 하나님께서 영의 관점에서 그분이 성육신하시어 인자가 되었음을 의미하고, 자신을 위해 증거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을 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성령께서 만약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라고 직접 증거하셨다면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당시 사람들은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을 막 접했고 성육신에 대한 인식도 부족했습니다. 그들은 평범한 인자가 바로 하나님 영의 화신이고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신 것임을 생각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말씀을 선포하고 역사를 하시며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고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을 보여 주셨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역사에서 그분이 바로 하나님 자신이고, 하나님께서 나타나심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그저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이고 엘리야이며 선생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시 사람들의 분량을 생각하시어 예수님을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증거하셨습니다. 잠시나마 사람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식하게 한 것입니다. 그래야 사람들의 생각과도 맞고 사람들이 받아들이기도 쉬웠기 때문입니다. 당시 예수님께서 하신 사역은 구속 사역이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뭐라고 칭하건 예수님을 구세주라고 믿으면 그들의 죄는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을 갖추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하신 것은 당시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신 선택입니다. 그리고 당시 사람들의 분량과 무지함으로 우리의 나약함을 살피시는 하나님도 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애쓰시는 마음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도 본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만약 우리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여긴다면 그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한 사람으로 보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겠습니까?

위에서 교제한 이야기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 자신이며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사역하신 몇 년에만 해당하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구속 사역을 끝내신 후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말은 없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아멘!

📺 동영상 추천 :<경건의 비밀 (속편)>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인가, 하나님 자신인가?

1/06/2020

돈과 목숨을 바꾸던 시절에 안녕을 고하다


돈과 목숨을 바꾸던 시절에 안녕을 고하다. [전능하신하나님교회, 전능신교]

한국 진취

수많은 사람 중에 택함 받아 하나님 앞에 오게 됐어요
말씀 속에서 진리 얻어 내 마음 따뜻하고 행복해요
아름다운 모습 익숙한 소리, 처음처럼 변함없어요
감미로운 사랑을 느껴 보니 하나님을 떠날 수 없어요
하나님이 없는 나날들 너무나 힘들었어요
비틀거리는 걸음마다 마음이 쓰리기만 하네요
하나님이 지켜 주셔서 오늘까지 살아왔어요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 마음이 채워지네요
(《어린양을 따르며 새노래 부르네 · 하나님에 대한 그리움》 중에서)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교회의 이 찬양을 들을 때면 제 마음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돈의 소용돌이에서 구해 주셨고 제가 더는 미친 듯이 일하지 않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목숨을 돈과 맞바꾸려 했던 삶과는 안녕을 고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 고군분투편 — 심신 악화
가난했던 집안 탓에 저는 어려서부터 친척과 친구들이 저를 비웃고 깔보는 일은 너무 당연한 일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굳게 다짐했습니다. ‘어른이 되면 돈을 많이 벌어서 꼭 남들보다 더 나은 삶을 살겠어. 저들이 날 다시 보게 할 거야.’ 어른이 된 후 돈 버는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저는 제 돈을 써가며 지인들에게 밥을 사줬고 돈 버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사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술에 잔뜩 취한 친구가 다른 사람과 실랑이를 벌였고 친구를 막던 과정에서 저는 눈을 다쳐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친구들은 제게 슬슬 거리를 두었고 저는 참 씁쓸했습니다.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많은 돈이 나갔고 집은 큰 빚을 떠안게 되었습니다. 엄청난 부담에 잠이 들지 못한 밤도 많았습니다. 가끔은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 강가까지 뛰어가 고함을 지르기도 했습니다. 잔인한 현실 앞에서 이 사회가 돈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사회이며 부가 곧 그 사람의 지위를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는 제 생각을 더욱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한번 굳게 다짐했습니다. ‘반드시 많은 돈을 벌어서 남들에게 무시당하던 이 삶을 청산하겠어!’

그 후 해외로 나가서 일하면 돈을 많이 준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물론 위험은 컸지만, 돈을 많이 준다는 말에 다른 여러 가지를 생각할 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해외에 나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어느 날, 저는 한 조업 회사와 계약서를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계약서상에 똑똑히 쓰여 있는 ‘조업 중 사망 시 회사는 5만 위안(한화 약 840만 원)을 배상한다’라는 조항을 봤을 때 심장이 ‘철렁’하고 가라앉았습니다. ‘난 이제 29살인데. 정말 돌아오지 못한다면 아내와 아이는 누가 돌봐 주지?’ 하지만 곧 생각을 바꿔 ‘밖에 나가서 돈을 벌지 않는다면 그 많은 빚을 어떻게 갚고 내가 그리던 삶을 어떻게 실현하겠어? 한번 해 보자. 만약 정말 돌아오지 못한다고 해도 아내와 아이에게 5만 위안(한화 약 840만 원)은 남길 수 있으니 그걸로 됐어.’ 그렇게 저는 가족들에게 말한 후 해외로 떠났습니다.

2000년 12월 어느 날, 저는 조업 어선을 타고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로 가서 조업했습니다. 파도가 거칠게 일었고 언제든 사람들을 집어삼킬 것만 같았습니다. 팽팽한 긴장감을 한순간도 놓칠 수 없었습니다. 그때 제 옆에 있던 한 선원의 발이 낚시 그물에 엉키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순식간에 파도가 덮쳤고 그 선원은 제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 놀라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이건 정말 목숨 걸고 돈 버는 거네! 나도 저렇게 위험한 상황에 놓이는 건 아닌지 걱정돼. 하지만 어쩔 수 없어. 아무리 위험해도 해야 해. 돈이 있어야만 당당하고 사람답게 살 수 있고 다른 사람이 부러워하고 우러러보는 삶을 살 수 있어.’ 그렇게 저는 요행을 바라며 억지로 4년을 했습니다. 그리고 꽤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평안히 귀국하던 그 날 저는 너무 감격했고 드디어 제 삶에도 화창한 봄날이 찾아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귀국하자마자 저는 우선 집부터 인테리어 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전제품도 사들였습니다. 친척과 이웃, 그리고 친구들은 저를 다시 보며 제가 능력 있다고 추켜세웠습니다. 그리고 먼저 나서서 우리 집 일을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저는 득의양양했습니다. 속으로 돈이 있는 삶이 좋은 삶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습니다. 돈이 곧 모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끝을 모르고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어 했습니다.

2008년 3월, 넷째 숙부가 제게 한국의 한 고무 가공 회사에서 일하지 않겠냐고 제안하셨습니다. 공장에선 고무 냄새가 심하게 났고 몸에도 좋지 않았지만, 돈만 많이 벌 수 있다면 저는 아무 상관 없었습니다. 심지어 하루 24시간 일할 때도 있었습니다. 코피가 났지만 일을 멈추기는 싫었습니다. 이런 제 모습을 보면서 큰 엄마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카, 너무 자신을 혹사하면서 일하지 마. 건강도 신경 써야지. 건강해야 돈을 벌 수 있는 것 아니겠어?” 큰 엄마는 옳은 말을 해 주셨고 저도 잠시 일을 멈추고 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하루 쉬면 얼마나 많은 돈을 벌 기회가 날아가는 건지를 생각하니 쉬고 싶다는 생각이 싹 달아났습니다. ‘젊고 힘 있을 때 많이 벌어 놓자. 나중에 당당히 귀국하면 온 가족이 함께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2011년, 아내와 아이도 한국으로 왔습니다. 그 후 저는 고무 공장을 그만두고 아내와 함께 굴삭기 강판 제조 공장으로 출근했습니다. 이 공장은 직원 대우도 좋았고 급여도 안정적이었으며 일도 많았습니다. 아내와 저는 매일 아침 8시부터 저녁 11시까지 일했습니다. 그 이외 시간에 야근하기도 하고 주말에도 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한 달을 일하니 아내와 저는 한국 돈으로 700만 원을 벌게 되었습니다. 벌어들인 돈을 보며 저는 정말 기뻤고 아무리 힘들어도 가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저는 혈당이 낮아 화를 내거나 과도하게 피곤하면 안 됐고 굶어도 안 됐습니다. 하지만 돈 앞에서 저는 그런 것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일할 때면 사탕을 들고 다니면서 혈당이 떨어지는 것 같으면 사탕을 한 알씩 먹었습니다.

2014년 3월, 몸에 적신호가 켜졌습니다. 오른쪽이 항상 식은땀이 났습니다. 제 증상을 인터넷에 검색해 본 아내는 뇌혈전의 초기 증상이라며 얼른 병원에 가서 검사받으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일하는 데에 크게 지장이 없는 것 같고 병원에 가서 검사받으면 또 돈이 나간다고 생각한 저는 아내의 말에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두 다리가 저렸습니다. 아내는 출근하지 말라고 말하며 우선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 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날은 일요일이었고 추가 근무할 경우 급여의 2배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내의 말을 듣지 않고 원래대로 출근했습니다. 그런데 근무하다가 갑자기 손과 발이 말을 듣지 않았고 저는 그제야 당황하여 병가를 낸 후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서둘러 병원에 도착했을 때 두 다리는 아무런 감각이 없었습니다. 의사는 저한테 휠체어에 앉으라고 했지만 저는 휠체어로 몸을 옮기는 것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CT 검사가 끝난 후 의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CT 검사 결과 동맥경화입니다. 우측 신체 세포 중 20%가 손실됐어요. 즉시 치료받지 않으시면 평생 휠체어를 타셔야 하고 말하기나 글쓰기 모두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의사의 말에 저는 온몸에 힘이 쫙 풀렸습니다….

입원 기간, 병상에 누워 저마다의 고통을 갖고 살아가는 다양한 환자들을 보면서 문득 제 자신이 처량해졌고 끊임없이 제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나는 이제 44살인데. 아직 젊은데. 왜 내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거지? 평생 열심히 일하며 살아오면서 돈을 많이 벌면 사람들이 나를 부러워하고 우러러보며 앞으로 행복한 삶을 살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반신이 마비되어 병상에만 누워 있어야 하는 신세라니. 앞으로 남은 세월 동안 정말 휠체어에 앉아서 보내야 하는 건가? 난 이제 어떻게 살아가지? …’ 생각할수록 너무 괴로웠습니다. 돈과 다른 사람의 위에 서기 위해 몸을 망가뜨린 자신이 원망스러웠습니다. 더 씁쓸했던 건 제가 입원하고 있는 동안 한국에서 일하고 계신 큰 엄마와 사촌 동생이 저를 보러 와서는 몇 마디 위로도 하지 않은 채 돈만 주고 급하게 자리를 떠났다는 것입니다. 저와 가장 친한 큰 누나마저도 일이 바쁘다며 저를 돌봐주지 않았습니다. 가족의 냉정함에 저는 개탄했습니다. ‘이따위 돈이 사람 마음을 이렇게 차갑게 만들다니. 가족의 정도 모두 사라진 것인가?’

며칠 후, 제 병세가 호전되었습니다. 의사는 집으로 돌아가서 요양해도 좋다면서 아직 일은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집에서 요양하는 동안 저는 순식간에 삶의 목표를 잃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매일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자신에게 질문했습니다. ‘이제 돈도 벌었고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은 나를 다시 봤어. 아내와 아이도 내 곁에 있는데 왜 난 삶이 공허하고 인생의 목표가 없는 것 같지? 사람은 대체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일까? 돈 버는 것이 내 삶의 유일한 목표인가? 앞으로 나는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채 살아가는 것일까? …’ 셀 수 없이 많은 질문이 떠올랐지만, 질문에 답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한동안 요양한 후 제 병세는 더욱 좋아졌고 집에 있는 것이 너무 답답했던 저는 막 회복한 몸을 이끌고 다시 출근했습니다.

👉 하나님의 사랑편 — 고진감래
2016년 10월, 둘째 누나가 양(楊) 자매님과 함께 집으로 찾아와서 저와 아내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증거해 주었습니다. 교제를 통해 저는 하나님이 만물의 주재자이시며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우리 인류의 운명이 모두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신 날부터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줄곧 우리를 이끌어 주시고 공급해 주셨으며 항상 우리를 지켜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해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운명을 주재하시고 우리를 지켜 주시면 우리는 당연히 행복하고 즐거워야 하는데 왜 우리에겐 많은 병과 고통이 찾아오는 것일까요? 이런 고통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그래서 저는 제 어려움을 양 자매님께 털어놓았고 자매님은 제게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을 읽어 주었습니다. 『사람 일생의 생로병사라는 이런 고통은 다 어디에서 온 것이냐? 왜 사람에게 이런 고통이 있게 되었느냐? 시초에 사람을 만들었을 때 사람에게 이런 고통이 있었느냐? 없었겠지? 그럼 이런 것은 어디에서 온 것이냐? 사탄에게 유혹되어 사람의 육체가 타락된 후에 있게 된 것이다. 육체의 고통과 번뇌와 공허 그리고 인간 세상의 이런 처참한 일은 다 사탄이 패괴시킨 후 사람을 괴롭히면서 있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점점 타락되어 질병도, 고통도 점점 심해졌고, 갈수록 인간 세상의 공허함과 비참함, 인간 세상에서의 생존이 불가함을 느끼게 되었다. 사람은 인간 세상에 점점 희망이 없어진다고 여기는데, 이런 것은 다 사탄이 패괴시킨 후에 있게 된 것이다.』

자매님이 교제했습니다. “처음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그들을 에덴에 머물도록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을 들었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배했습니다. 하나님의 가호 속에 그들은 아무 걱정 없고 행복한 삶을 살았으며 병마도 고통도 슬픔도 없었습니다. 그 후 사탄이 사람을 유혹하고 타락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도 사탄의 말을 들으며 하나님을 배신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가호와 축복을 잃었고 사탄의 권세 아래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사탄은 사람을 타락시키고 고통스럽게 만들었으며 각종 질병과 고통이 사람에게 찾아왔습니다. 수천 년 동안 사탄은 학교의 교육, 부모의 양육, 유명한 인사나 위인의 교훈, 각종 사악한 흐름 등을 이용해 ‘운명은 자신의 손안에’, ‘남들보다 뛰어나야 한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사람이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는다.’ ‘사람은 돈을 위해 산다’ 등의 사상과 관점을 강제로 우리에게 주입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관점으로 살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주재를 부정했습니다. 우리의 성품에는 점점 교만함, 이기적, 비겁함, 교활함, 사악함과 욕심이 자리하게 되었고 돈과 명예, 지위, 즐거움을 누리고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서로 속이고 다투며 아부하고 아첨하고 암투를 벌이고 기만했습니다. 심지어 비겁한 수단까지 동원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 득과 실, 방어와 계산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심신이 지치고 고통스러웠으며 온갖 질병과 고통, 마음속 공허함이 우리에게 찾아왔습니다. 서서히 우리는 삶의 방향과 목표를 잃었고 삶의 의미와 가치가 무엇인지 모르게 되었습니다. 어떤 이는 함부로 몸을 방임하며 먹고 마시고 노는 것에 신경 쓰고 자극적인 것을 위해 마약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찰나의 즐거움이 지나간 자리에는 공허함만 남았습니다. 심지어 어떤 이는 자살을 통해 고통스러운 삶을 마감하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키고 사람에게 하나님을 부인하고 멀리하게 만들어 발생한 결과입니다.”

자매님의 교제를 듣고 나서야 저는 우리가 사탄에 의해 타락된 후 이런 고통과 질병이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태초의 아담과 하와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순종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 속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몇 년 동안 저를 괴롭혔던 궁금증을 해소해 주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택하심에 매우 감사드렸습니다. 그 후 아내와 저는 기쁜 마음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세 사역을 받아들였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사역을 받아들이다 [사진제공: 전능하신하나님교회,전능신교]

그 후에 저와 아내는 교회 생활에 참가하게 되었고 종종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볼수록 마음이 환해졌고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6천년 경륜, 사탄이 인류를 타락시키는 방법, 앞으로 인류의 결말과 종착지, 사람은 무엇을 추구하기 위해 사는지 등과 관련한 각 방면의 진리의 비밀에 대해 조금이나마 인식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양육해 주시고 이끌어 주신 덕분에 저는 하나님께서 인류를 만드신 이유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앞으로 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의 앞날과 운명을 모두 하나님께 맡기며 하나님의 주재와 배치에 순종하길 바라는 마음이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말세에 선포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사탄의 각종 계략을 드러내셨습니다. 우리가 진리를 깨우치면 사탄의 사상 관점과 잘못된 점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고 그래야만 사탄의 생각으로 살지 않으며 사탄의 통제와 구속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유롭게 하나님의 앞에서 살 수 있습니다. 서서히 예배를 많이 드리게 되면서 저는 진리를 깨우쳤습니다. 마음속에 있던 공허함과 고민도 어느샌가 사라졌고 마음 깊은 곳에서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샘솟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것을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예배를 드리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라는 말은 사탄의 철학으로, 인류와 모든 사회에서 유행하는 말이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 주입되어 자리 잡고 있으므로 트렌드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 이 말을 수긍하지 못했던 사람도 듣다 보면 익숙해지고, 실생활에서 차츰 묵인하게 된다. 이 말의 존재를 인정하다 결국에는 공감하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이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키는 과정이 아니겠느냐? … 너희는 돈 없이는 이 세상을 단 하루도 살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사람은 돈을 많이 가질수록 높은 지위를 누리고 좋은 대접을 받는다. 기를 펴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과는 달리 부자는 높은 지위를 누리고 거만을 떨며 큰소리를 치고 오만방자하게 살아갈 수 있다.’ 이 말과 트렌드가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 많은 사람들이 돈을 위해 어떠한 대가라도 기꺼이 치르지 않느냐? 더 많은 돈을 얻기 위해 존엄성과 인격을 포기하지 않느냐? 더 나아가 돈 때문에 본분을 이행할 기회와 하나님을 따를 기회를 놓치지 않느냐? 이는 사람에게 손해가 아니냐? (그렇습니다.) 사탄이 이런 방식, 이런 말로 사람을 이 정도로 타락시켰다. 사탄의 속셈이 음흉하지 않으냐? 이는 아주 악랄한 수법이 아니냐? 이 유행어를 처음에 수긍하지 못하던 데서 이를 진리로 받아들이게 되기까지 사탄은 네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는다. 그래서 너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말대로 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맞춰 보며 저는 제가 고통스럽게 살았던 이유가 사탄에게 농락당하고 고통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최근 몇 년을 돌이켜보면 저는 사탄이 주입한 ‘황금만능주의’,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 ‘사람은 돈을 위해 산다’와 같은 생존의 법칙으로 살았고 돈만 있으면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사람답게 살며 다른 사람이 우러러보고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위험한 일이나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고 건강은 뒤로한 채 밤낮없이 야근했습니다. 돈에 미쳐 버린 로봇처럼 말입니다. 다시 말해 목숨 걸고 돈을 벌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나요? 돈은 벌었고 다른 사람이 부러워하고 우러러봤지만 제 몸은 힘든 나머지 망가지고 말았습니다. 병마가 덮치고 나서야 저는 돈과 명예, 지위는 저의 고통을 조금도 덜어줄 수 없고 제 삶을 알차고 기쁘며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도 없으며 오히려 허무함과 막막함 속으로 몰고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삶에서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도 모른 채 매일 힘들고 고통스럽게 살았습니다. 저는 그저 살아 있는 시체와도 같았습니다. 결국 제가 이렇게 힘들고 씁쓸하게 걸어온 것은 모두 사탄이 저를 타락시키고 고통스럽게 한 결과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지 않으셨다면 저는 계속 사탄의 괴롭힘과 짓밟힘 속에서 돈을 위해 바삐 살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돈과 지위의 노예가 되고 몸이 망가져 결국 목숨까지 해치고 사탄의 짓밟힘 속에서 죽음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이제야 저는 돈과 명예, 이익은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키고 괴롭히는 방법 중 하나이며 그 안에는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키고 삼켜 버리려는 계략과 음험한 속셈이 들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때 저는 사탄이 사람을 타락시키고 고통을 주는 방법에 대해 조금이나마 분별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하고 더는 돈과 명예, 이익을 위해 살지 않을 것입니다.

👉 전환편 — 새로운 삶
그 후 저는 모든 생각을 돈에 쏟지 않았고 시간 날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며 형제자매와 예배드리고 하나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하지만 낮에 출근하다 보니 너무 힘들어 예배 시간에 하나님 말씀을 볼 때면 종종 졸았고 어찌하면 좋을지 몰랐습니다. 특히 형제자매들이 예배 시간에 본분을 이행하면서 얻은 수확에 관해 교제할 때면 저는 안달이 났고 부럽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믿으면 안 되고 생명이 자라는데 영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루는 영적 생활을 하다가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시간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너는 하나님을 믿는 일을 일생의 중대사로 삼고 대해야 한다. 먹고 입는 것보다, 네 인생의 어떤 일보다 중요하게 대하면 수확이 있을 것이다. 네가 늘 심심풀이로 믿고, 믿음에 전념하지 못하고, 늘 건성으로 믿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하나님 말씀을 본 후 저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입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예배만 드리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많은 심혈을 기울여 그 뜻을 묵상하고 진리를 추구하며 교회에서 본분을 이행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으로 많이 옮기고 체험하며, 하나님을 알고 자신을 아는 길을 추구하여 점점 더 많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요구를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은 시간 자체가 매우 짧았고 게다가 일도 바빠 예배를 드리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볼 시간이 많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사역을 체험할 기회도 훨씬 적었습니다. 만약 제가 열심히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진리를 깨우치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이대로는 안 됩니다. 저는 열심히 진리를 추구하고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 진리를 갖추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체험해야 합니다.

그 후 저와 아내는 상의 끝에 조금 더 쉽고 시간상으로 여유가 있는 업무로 바꾸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회사 주임님께 사직 의사를 밝히자 주임님이 거절하며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관두는 것만 아니라면 모든 조건을 다 들어주겠네.” 제가 말했습니다. “정상적으로 출퇴근하고 야근 없이 주말에는 쉬고 싶습니다.” 그런데 주임님이 호탕하게 제 요구를 받아 주었습니다. 그 후 저는 예배드리고 하나님 말씀을 볼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습니다. 어느 날,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을 때, 하나님을 볼 수 없을 때, 하나님의 주재를 분명하게 알 수 없을 때, 그 하루하루는 의미도 가치도 없으며 아주 고통스러울 것이다. 어디에 있든, 어떤 일을 하든 사람의 삶의 방식과 추구 목표는 끝없는 슬픔과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을 가져다주어 지나온 길을 돌아볼 수조차 없게 한다. 오로지 창조주의 주재를 받아들이고, 그의 섭리에 순종하고, 참된 삶을 추구할 때, 사람은 차츰 모든 슬픔과 고통에서 풀려나고 삶의 공허함을 떨쳐 버릴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저도 모르게 목숨 걸고 돈 벌었던 그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의 주재를 모르고 사탄이 주입한 생존 법칙으로 살아 무조건 돈과 명예, 지위만 쫓았습니다. 정말 씁쓸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고 행복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돈이 건강보다 우선시 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병마가 닥쳤을 때 아무리 많은 돈도 제 목숨을 구해 줄 수는 없었고 제 고통을 덜어줄 수도 없었습니다. 사탄은 돈과 명예, 이익으로 우리를 유혹했고 우리의 욕심을 움켜잡아 우리가 하나님의 주재에 순종하지 않고 고개를 빳빳이 들고 하나님께 대항하며,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에서 벗어나 사탄에게 통제당하고 짓밟히며 고통받게 했습니다. 이제 더는 운명과 맞서지 않을 것이며 목숨을 대가로 돈을 벌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건 진정한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재와 배치에 따르며 하나님을 만족게 해 드리는 삶을 살고 피조물의 본분을 이행해 하나님을 증거해야만 허무함과 고통스러운 삶에서 진정으로 벗어나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저와 아내는 복음을 전하는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이제 저는 매일 형제자매와 함께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증거하며 매일 알차게 살고 있습니다. 마음에도 평화와 기쁨이 찾아왔으며 겉모습과 마음가짐 모두 완전히 새롭게 바뀌었습니다. 저를 아는 사람들은 제게 점점 젊어진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제게 베풀어 주신 축복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사탄의 구속과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만끽하게 되었습니다!